월요일 아침입니다. 지난주 매출 현황을 확인하려고 공유 폴더를 여는데 파일이 네 개나 있어요. 매출정리_최종, 매출정리_최종_수정, 매출정리_최종_수정2, 매출정리_진짜최종.
어느 게 진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단 날짜가 가장 최근인 걸 열어 봤더니 숫자가 이상해요. 지난주 금요일에 분명히 수정했는데 그 내용이 반영이 안 돼 있는 겁니다. 누군가 다른 파일 위에 덮어쓴 거예요.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면 아마 그 순간 한숨이 나왔을 겁니다. 또 이러고 있구나 싶은 그 기분 있잖아요. 그건 엑셀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엑셀에게 맡기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엑셀은 훌륭한 도구예요. 계산이 빠르고 정리도 잘 되니까 한 사람이 한 파일로 관리하는 수준이라면 이만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가 커지면서 생겨요.
재고 관리도 엑셀이고 매출 집계도 엑셀인데, 이 파일들이 각각 따로 놀고 있어요. 서로 연결이 안 되니까 사람이 직접 옮겨야 합니다.
재고 파일에서 이번 달 출고량을 확인하고, 그걸 복사해서 매출 파일에 붙여넣기 해요. 거기서 다시 숫자를 뽑아서 보고서 파일에 옮기고요. 이 과정을 매주 반복합니다. 어떤 회사는 매일 해요.
사람이 옮기니까 실수가 생기는데, 그걸 바로 알아챌 수가 없어요. 월말에 숫자가 안 맞아서 한참을 뒤져 보면 3주 전에 복사 붙여넣기 하면서 한 줄을 빠뜨린 겁니다. 그걸 찾아내기까지 반나절을 날리면 정말 허탈하거든요.
그런데 이건 엑셀의 잘못이 아니에요. 엑셀한테 시스템 역할을 시킨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검색해 봅니다. 답은 하나처럼 보여요. ERP를 도입하라는 겁니다. 엑셀의 한계를 다룬 글이 열 개 있으면 아홉 개가 ERP를 권해요.
그래서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SAP는 대기업용이라 넘기고 중소기업용 ERP를 찾아봐요. 데모 화면을 열어 보니 기능이 많습니다. 재고 관리부터 인사 관리까지 다 들어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요. 우리 회사 직원이 열두 명인데 인사 관리 모듈이 필요할까요. 생산 관리 모듈은요. 우리는 제조업이 아닌데 말이에요.
결국 쓰는 기능은 전체의 20% 정도고, 나머지 80%는 메뉴에 있기만 하고 아무도 안 누릅니다.
그러다 진짜 문제가 드러나요. 우리 회사 업무 방식과 ERP의 프로세스가 안 맞는 겁니다. ERP는 정해진 흐름대로 데이터를 넣으라고 하는데, 우리 회사는 그 흐름대로 일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두 가지 중 하나예요. 회사 업무 방식을 ERP에 맞추거나, 비싼 돈 들여서 커스터마이징을 하거나.
어느 쪽이든 부담이에요. 결국 석 달쯤 지나면 다시 엑셀을 열게 됩니다. ERP는 로그인 화면만 남아요.
가장 비싼 시스템은 도입해 놓고 안 쓰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면 대안은 뭘까요. 여기서 한 발 물러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전사 ERP가 정말 필요한 회사가 있긴 합니다. 직원이 수백 명이고 부서 간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흘러야 하는 곳이에요. 그런 회사에는 ERP가 맞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열 명이고 스무 명인 회사는 이야기가 달라요. 이 규모에서 필요한 건 전사 시스템이 아니라 "지금 가장 반복되는 업무 하나"를 시스템으로 바꾸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재고 확인에 매일 30분을 쓰고 있다고 해 봅시다. 창고 담당자가 엑셀 파일을 열고 입고 수량을 입력하고, 출고 수량을 빼고 남은 수량을 계산해요. 이걸 웹 화면 하나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입고 버튼을 누르면 재고가 올라가고, 출고할 때도 버튼 하나면 끝이에요. 지금 재고가 몇 개인지는 대시보드에서 바로 보이고요. 그 30분이 사라지는 겁니다.
월말 매출 집계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저기 흩어진 엑셀 파일을 모아서 숫자를 대조하고 합산하는 그 작업 있잖아요. 처음부터 주문 데이터가 한 곳에 쌓이는 구조를 만들면 됩니다. 월말에 버튼 하나 누르면 리포트가 나와요.
거창한 게 아니에요. 우리 회사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반복 업무 하나를 골라서 거기에 딱 맞는 웹 시스템을 붙이는 거예요. 그게 시작입니다.

여기서 자주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어요.
"어떤 기술로 만들까"를 먼저 고민하는 거예요. 리액트로 할까 플러터로 할까, 클라우드는 AWS가 좋을까 GCP가 좋을까. 이런 고민부터 하게 되는데 그런 건 나중 문제입니다.
먼저 답해야 하는 질문은 이거예요.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반복 업무가 뭔가."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개발사가 대신 해 줄 수 없어요. 대표가 현장을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래 질문에 한번 답해 보세요.
지금 이 질문에 "예"가 하나라도 있다면 시스템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 겁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엑셀 파일 여는 일입니까?
"이건 사람이 안 해도 되는데"라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월말마다 숫자 맞추느라 야근하는 직원이 있습니까?
담당자가 휴가를 가면 그 업무가 통째로 멈춥니까?
그 지점이 시스템이 들어가야 할 자리예요.
기술은 그다음이에요. "이 업무를 어떻게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지"는 그때 전문가와 이야기하면 됩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 쓰는 시스템이 하나 더 생기는 거예요.
정리할게요.
엑셀은 계속 쓰면 됩니다. 빠르게 계산하고 간단히 정리하는 데는 여전히 엑셀이 최고예요.
그런데 파일이 수십 개로 늘어나고 있다면요. 복사 붙여넣기로 데이터를 옮기는 데 하루에 한 시간 넘게 쓰고 있다면요.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그 파일의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면요.
그건 엑셀이 하면 안 되는 일을 엑셀에게 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사 ERP를 들여야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가장 아픈 업무 하나를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 시작을 어디서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요. "우리 회사에서 가장 반복되는 업무가 뭔지"부터 적어 보세요. 답이 보이기 시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