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생태계
창업 처음이면 이 그림 하나만 알면 돼요
밤 11시쯤, 검색창에 "창업 자금"을 쳐본 적이 있습니까. VC, AC, 시드, 프리시드, 시리즈A, LP, GP, 모태펀드 같은 단어가 쏟아집니다. 탭을 열 개쯤 열어놓으면 처음보다 더 모르겠어집니다. 용어가 용어를 부르고, 설명이 설명을 부르고, 결국 브라우저를 닫게 됩니다. "내일 다시 봐야지" 하면서.
그런데 내일 다시 봐도 똑같습니다. 용어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 그림이 안 보이는 게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글에서 그림 하나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그림 하나만 머릿속에 들어가면, 나머지는 전부 이 그림 위에 얹히는 것들입니다. 아래 그림을 한번 보세요.
한국에서 창업 자금이 흐르는 길은 네 단계입니다. 큰 저수지에서 물이 내려오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맨 위에 큰 돈이 있습니다. 정부, 국민연금, 은행. 이 돈은 시장에 직접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벤처 투자사(VC)에 맡깁니다. VC는 그 돈을 받아서 "될 것 같은 회사"에 투자합니다. 수억에서 수백억 규모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VC는 갓 시작한 회사에 잘 투자하지 않습니다. 제품도 없고, 매출도 없고, 팀도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서 수억을 넣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초기 투자사(AC)가 있습니다.
AC는 갓 시작한 회사를 돌봐줍니다. 아이디어를 듣고, 팀을 만들어주고, 몇천만 원에서 몇억 원 정도의 시드 투자를 해줍니다. 수개월간의 배치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이 나오도록 돕습니다. AC를 거쳐서 제품과 팀이 갖춰지면, 그다음에 VC가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큰 돈 → VC → AC → 당신. 이 네 단계가 한국 창업 자금의 전체 그림입니다. 밤 11시에 열어놓은 탭 열 개의 내용이 전부 이 그림 안에 들어갑니다.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그림에서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요.
맨 아래에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있고, 만들고 싶은 게 있고, 그런데 돈이 없는 자리. 그래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곳은 VC가 아니라 AC입니다.
한국에 AC가 500곳 넘게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름이 자주 나오는 곳은 프라이머, 오렌지플래닛, 블루포인트, 매쉬업엔젤스, 스파크랩, 디캠프 정도입니다. AC마다 관심 분야가 다릅니다. B2C 서비스면 프라이머, 딥테크면 블루포인트, AI·로보틱스면 오렌지플래닛이 잘 맞습니다.
500곳이나 있으니까 또 복잡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한 곳만 고르면 됩니다. 한 곳의 배치 프로그램에 지원해보는 게 첫 번째 경험이 됩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만 하면 됩니다.
첫째, 아이디어를 한 문장으로 씁니다. "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푼다." 이 한 문장이 안 나오면 아직 아이디어가 정리되지 않은 겁니다. 한 문장이 나올 때까지 다듬는 게 첫 번째 할 일이 됩니다.
둘째, 정부 예비창업 프로그램을 찾아봅니다. K-Startup 포털(k-startup.go.kr)에 들어가면 올해 열려 있는 창업 지원사업이 전부 모여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가 5월 15일까지 열려 있습니다. 한 달 만에 1만 건이 몰렸습니다.
셋째, AC 한 곳을 골라서 홈페이지를 들어가봅니다. 지원 방법, 배치 일정, 투자 규모가 다 나와 있습니다.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가 느껴집니다.
이 세 가지를 오늘 안에 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를 하고 나면, 어제까지 막막했던 것들이 조금씩 윤곽을 잡기 시작할 겁니다.
한 가지 더. 요즘 분위기입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조사에서 올해 창업자 42.5%가 "분위기가 긍정적"이라고 답했습니다.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정부도 VC 규제를 풀고 있습니다. 좋다는 게 아니라, 지금이 덜 나쁜 시기라는 얘기입니다. 시작하기에 최악은 아닙니다.
그런데 시작하려고 보면, 또 하나 막히는 게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그걸 실제로 만들어줄 사람을 어디서 찾느냐는 겁니다.
우리(흐름소프트)는 매일 10분씩 한국 창업 생태계를 살펴봅니다. 오늘 누가 어디에 투자했고, 어떤 AC가 어떤 팀을 뽑았고, 어떤 공고가 새로 열렸는지를 기록합니다.
왜 그런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이 IT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우리가 이미 옆에 있기 위해서입니다.
창업자에게 필요한 건 "싸게 만들어 주는 외주"가 아닙니다. 이미 시장 상황을 알고 있고, 같이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기술 파트너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흐름소프트가 매일 관찰·정리하는 창업 생태계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