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만드실 건데요?"
앱을 만들고 싶다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분들에게 "뭘 만드실 건데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잠깐 멈춥니다.
"배달앱 같은 건데요", "당근마켓이랑 비슷한데요" — 대답은 나오지만, 그다음이 이어지지 않더군요. 기능은 떠오르는데, 그 기능이 왜 필요한지는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합니다. 검색을 하고, 플랫폼에 가고, 개발사를 만납니다.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그런데 이 순서 안에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문제들이 숨어 있습니다. 저는 개발사로 일해봤고, 발주자로도 일해봤습니다. 양쪽에서 같은 문제를 봤습니다.
플랫폼은 여기까지 도와줍니다
위시켓, 크몽 같은 중개 플랫폼에 프로젝트를 등록하면, 매니저가 붙습니다. 어떤 걸 만드시려는 건지 상담해 주고, 흩어진 요구사항을 정리해 주고, 예산과 일정에 맞는 개발사를 연결해 줍니다.
여기까지는 꽤 도움이 됩니다. 혼자서는 정리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매니저와 대화하면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니까요. 견적도 비교할 수 있고, 포트폴리오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계약서에 사인한 다음 날부터 시작됩니다.
개발이 시작되면, 혼자 남게 됩니다
매칭이 되고 계약이 끝나면, 플랫폼의 역할은 거의 끝납니다. 중개까지가 그들의 일이니까요.
그런데 진짜 어려운 건 개발이 시작된 뒤에 찾아옵니다.
만들다 보면 기획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화면 세 개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만들어보면 화면 사이에 분기가 생기고, 예외 상황이 나타나고, "이건 생각 못 했는데"가 튀어나옵니다.
이때 개발사에 "이것도 넣어주세요"라고 하면, 추가 비용이 붙습니다. 방향을 바꾸고 싶으면 이미 만든 것을 되돌려야 하고, 되돌리는 데도 시간과 돈이 듭니다. 심한 경우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 이 어딘가에 서 있거나, 곧 서게 될 겁니다.
개발사 입장에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발주자가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면, 개발사는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건데요?" 그런데 발주자도 답을 모르면, 양쪽 다 멈춥니다. 개발사는 기다리게 되고, 발주자는 조급해지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결과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발주자로서 이 멈춤을 겪었고, 개발사로서 이 멈춤을 받아봤습니다. 양쪽 다 괴로웠습니다.
빠져 있던 건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문제는 개발사를 잘못 골라서 생긴 것도 아니었고, 플랫폼이 부족해서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가 빠져 있었습니다.
"내가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가."
앱을 만들겠다는 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 목적이고, 앱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게 정리되지 않은 채로 플랫폼에 가면, 매니저는 기능 목록을 정리해 줄 수 있지만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는 대신 정해줄 수 없습니다. 개발사에 가면 견적은 나오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는 개발사가 대신 판단해줄 수 없습니다.
이건 만드는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만들겠다고 결정한 사람의 몫입니다.
가기 전에 세 줄만 써보십시오
복잡한 기획서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세 줄이면 충분합니다.
먼저, 누구의 어떤 문제인지를 적어보십시오. 고객이 어떤 상황에 있고, 그 상황에서 뭐가 불편하고, 지금은 그걸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차부장터를 만든 사장님은 "중고 휠을 찾으려면 카페 게시글을 수십 개 열어봐야 했고, 반나절이 그렇게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시터나라를 만든 부부는 "아이 맡길 시터를 찾으려면 맘카페를 끝없이 스크롤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이어야 대화가 시작됩니다.
다음으로, 그 문제가 앱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따져보십시오. 웹사이트로 되는 건 앱일 필요가 없습니다. 앱이어야 하는 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동 중에 써야 할 때, 푸시 알림이 필요할 때, 카메라나 GPS를 써야 할 때, 매일 반복적으로 열어야 할 때.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홈페이지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두 줄을 쓰고 나서 "이건 앱까지는 필요 없겠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성과입니다. 수천만 원을 쓰기 전에 방향을 잡은 것이니까요.
이 세 줄이 있으면 어디에 가든 대화가 됩니다
플랫폼에 가면 매니저가 이 세 줄을 보고 바로 프로젝트를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개발사에 가면 견적이 정확해지고, 만들다가 "이게 아닌데"가 나올 확률이 줄어듭니다. AI로 직접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더라도, 이 세 줄이 있으면 방향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작은 코딩이 아닙니다. 기획서도 아닙니다.
누구의 문제인지, 왜 앱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안 만들어도 되는지. 지금 메모장을 열고 이 세 줄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첫 번째 기획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