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팁스"를 검색해서 여기까지 오셨다면, 공고를 한 번은 열어보셨겠지요.
최대 1억 원에, 비수도권에, 투자 1천만 원 이상 — 거기쯤에서 멈추셨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 열었을 때 똑같았습니다. 조건 세 줄을 읽고 모니터를 끄고 싶어지더군요. "나는 아직 예비창업패키지도 안 해봤는데" —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한참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고가 높았던 게 아니더군요. 내가 어떤 단계에 있는지를 몰랐을 뿐이었습니다.
창업지원사업에는 계단이 있더군요
처음엔 몰랐습니다.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프리팁스, 팁스 — 이름만 들으면 다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거쳐보니 뚜렷한 순서가 있더군요.
아래서부터 한 칸씩 밟아 올라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각 단계마다 진입 조건이 달랐고, 지원 내용도 다르더군요. 한 번에 꼭대기로 뛰어오른 사람은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나온 순서대로 풀어보겠습니다.
예비창업패키지 — 노트 한 권이 전부이던 시절
사업자 등록 없이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어 하나와 사업계획서를 쓸 수 있는 손만 있으면 충분하더군요. 전국 어디서든 지원 가능했고, 선정되면 사업화 자금으로 최대 1억 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단계에서 꽤 오래 서성였습니다. 노트에 적어둔 아이디어를 열 번째 꺼내 보면서도 확신이 안 서더군요. "이걸 진짜 해도 되는 걸까" — 그 물음이 매일 아침 따라붙었습니다. 사업계획서 첫 줄을 쓰는 데 사흘이 걸렸고, 그 사흘이 창업 과정 전체에서 가장 길게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첫 줄을 쓰고 나면 둘째 줄은 좀 빨라졌습니다. 그 힘으로 다음 단계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초기창업패키지 — 만들었는데 아무도 안 오던 시기
사업자를 내고 3년 이내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더군요. 예비창업패키지를 거친 뒤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곧바로 뛰어드는 분도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신청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최대 1억 원이 지원되었습니다.
이 단계에 올라서니 고민의 색깔이 바뀌더군요. "만들긴 만들었는데, 고객이 안 온다." 앱스토어에 올려놓고 일주일째 다운로드가 한 자릿수일 때 — 그 숫자 앞에서 사람은 생각보다 작아집니다. 개발비를 어디에 먼저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통장만 들여다보던 날도 있었습니다.
출시 버튼을 누른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은, 준비 단계의 불안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그래도 그 고요함을 버텨야 다음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프리팁스 — 돈이 들어온 뒤에 오히려 조이는 구간
여기서부터 계단의 높이가 확 올라갔습니다.
접수 마감일 기준 1년 이내에 투자기관으로부터 1천만 원 이상을 유치해야 했습니다.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탈, 엔젤투자조합 같은 공식 투자 주체여야 했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받은 돈, 은행 대출, 정부 보조금은 인정되지 않더군요.
비수도권이어야 했습니다. 서울·경기·인천은 빠졌습니다. 대표 포함 상시 2인 이상, 창업 3년 이내 — 이걸 동시에 갖춰야 비로소 지원서를 낼 수 있더군요.
투자금이 들어온 날 밤, 통장 잔고를 세 번 확인하고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기쁘다기보다 무섭더군요. "이 돈으로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천장에 붙어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시제품을 고도화하고, 사업 모델을 검증하고, 후속 투자를 설득할 숫자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돈이 들어온 직후가 오히려 가장 조여오는 시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팁스(TIPS) — 기술을 시장의 언어로 바꿔야 하는 사람
프리팁스를 지나면 다음으로 보이는 단계였습니다. 투자 유치에 더해 기술력을 입증해야 했고, 운영사의 추천까지 받아야 하더군요. 전국에서 신청 가능했고, R&D 자금과 사업화 자금을 함께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의 질문은 하나로 수렴하더군요 — "기술은 있는데,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연구실에서 나와 시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었고, 그 문턱은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이 전혀 달랐습니다.
지금 서 있는 단계를 아는 것, 그게 먼저였습니다
프리팁스에 선정되는 기업은 연간 100개 남짓이라고 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려면 지금 자기 위치부터 정확히 알아야 했습니다.
아이디어만 있고 사업자가 없다면 — 예비창업패키지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사업자를 냈고 3년이 안 됐다면 — 초기창업패키지를 살펴볼 때가 되었습니다. 투자를 받았고 비수도권이라면 — 프리팁스, 이번 공고는 4월 20일에 닫힙니다. 투자도 있고 기술력도 갖췄다면 — 팁스까지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희도 예비창업패키지를 거쳤고, 지금은 이 계단 어딘가를 밟고 서 있습니다. 각 단계에서 어떤 고민이 올라오는지,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써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처음에 공고를 열고 모니터를 끄고 싶었던 건, 내 위치를 몰라서였습니다. 위치를 알고 나니 공고가 벽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주소로 읽히기 시작하더군요.
그제서야 다시 모니터를 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