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으로 시작해서 20억까지 간 팀이 있습니다. 2년 만에 매출 10배를 찍은 팀도 있습니다.

둘 다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 문이 어디 있는지, 누가 열 수 있는지, 열고 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열린 문 앞에 선 창업자

먼저, 돈이 어디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창업 초기에 자금을 구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정부지원금입니다. 예비창업패키지에서 시작해 초기창업패키지, 창업도약패키지로 이어집니다.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지만, 선발 경쟁이 치열하고 정해진 시기에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민간투자입니다. 액셀러레이터(AC)에서 시드 투자를 받는 것으로 시작해, TIPS를 거쳐 벤처캐피탈(VC)의 Pre-A, Series A로 이어집니다. 지분을 줘야 하지만 속도가 빠르고, 다음 라운드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함께 열립니다.

이 두 갈래가 완전히 따로 노는 건 아닙니다. 예비창업패키지를 받고 나서 AC 시드를 받는 팀도 있고, AC 시드를 먼저 받은 뒤 TIPS로 넘어가는 팀도 있습니다. 경로는 두 개이지만 섞을 수 있고, 어디서 시작하든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돈이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다음에 어디로 갈 수 있느냐를 아는 겁니다.

한국 스타트업 펀딩의 두 가지 경로 — 정부지원(예창패·초창패·도약) vs 민간투자(AC Seed·TIPS·Pre-A·Series A)

AC를 고를 때, 세 가지만 보면 됩니다

전체 그림이 잡혔으면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AC가 수십 개인데 어디를 골라야 하느냐는 겁니다.

프라이머, 스파크랩, 매쉬업엔젤스, 바른동행. 홈페이지에 가면 다 좋은 말이 써 있습니다. 비교하려고 해도 기준이 없으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기준은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첫째, 시드 금액입니다. AC마다 규모가 다릅니다. 수천만 원인 곳도 있고 1억 내외인 곳도 있고, 최대 3억까지 가는 곳도 있습니다. 이 금액으로 MVP를 만들고 팀을 최소 6개월 운영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둘째, 후속 라운드 연결력입니다. 시드를 주고 끝나는 AC가 있고, 시드 이후에 TIPS 추천과 Pre-A, Series A까지 연결해주는 AC가 있습니다. 3억을 다 쓰고 나면 그 다음이 필요한데, 그 다음을 연결해줄 수 있는 힘이 있는지가 시드 금액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셋째, TIPS 추천 가능 여부입니다. TIPS는 정부가 운영하는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인데, AC나 VC의 추천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습니다. 2026년 기준으로 선정되면 최대 8억 원 규모의 R&D 자금이 붙습니다. 처음 시드를 받는 AC가 TIPS 운영사인지 아닌지에 따라 이후에 열리는 자금의 폭이 크게 달라집니다.

얼마를 주는지, 다음을 연결해주는지, TIPS를 추천할 수 있는지.

바른동행은 이 세 가지를 다 갖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KIAC)가 운영하는 바른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앞의 세 가지 기준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시드 금액은 최대 3억 원이고, 선발되면 즉시 투자가 집행됩니다.

후속 라운드는 그룹 내부에서 이어집니다. KIAC는 한국투자금융그룹 안에 있고, 같은 그룹에 한국투자파트너스(KIP)가 있습니다. 시드 이후 성과가 나오면 KIP를 통해 시리즈 후속 투자가 연결되고, 그룹 인프라를 활용해 IPO까지 갈 수 있는 경로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TIPS는 직접 추천이 가능합니다. KIAC가 TIPS 운영사이기 때문에 우수 포트폴리오사를 직접 추천하고, 선정되면 최대 8억 원의 추가 자금이 연결됩니다.

나한테 해당되는지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업 3년 이내(공고마감일 기준)이고, Pre-money Valuation이 50억 원 이하이면 됩니다. 분야 제한은 없고, 예비창업자도 지원할 수 있으며 해외 법인도 가능합니다.

바른동행의 체력도 함께 봐야 합니다. KIAC는 2021년에 설립돼서, 지금까지 누적 투자 집행 416억 원, 운용자금 600억 원 규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는 121개사이고 그 기업들의 총 기업가치가 1조 474억 원입니다. 후속 투자 유치율이 44%를 넘는다는 건 바른동행을 거친 팀 중 절반 가까이가 다음 라운드를 이어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른동행 프로그램만 보면 2022년부터 누적 3,230개 기업이 지원해 83팀이 선발됐고, 누적 투자금은 198억 원을 넘었습니다.

여기에 부수적인 혜택도 있습니다. 삼성역 도보 5분 거리의 자체 오피스가 제공되고, OpenAI와 Anthropic 등 글로벌 빅테크 파트너 연계와 크레딧 지원이 들어가며, 투자 보도자료 배포를 포함한 PR·마케팅 지원과 포트폴리오사 커뮤니티를 통한 선배 창업자 네트워킹까지 열립니다.

한국투자금융그룹 — 바른동행 Seed(최대 3억원) → TIPS(최대 8억원) → KIP Pre-A → KIP Series A → IPO

이 길을 실제로 걸은 팀이 있습니다

구조가 좋다는 건 알겠는데, 진짜 된 팀이 있느냐고 물으실 겁니다.

이름과 숫자가 있는 팀입니다.

비링커 — 아버지 공장에서 시작해서, 미국까지 간 이야기

안재민 대표는 대학 시절 아버지의 금형 공장 일을 돕다가 창업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제조 현장은 여전히 종이 도면을 쓰고 있었고, 하나의 가공품을 만들려면 서너 개 업체를 거쳐야 했습니다. 비효율이 눈에 보였습니다.

예비창업패키지를 받아 창업에 나섰고, 바른동행 4기에 선발되면서 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비링커는 직접 공장을 갖지 않습니다. 고객사의 도면을 받아 가장 적합한 제조사를 매칭하고, 충남 천안에 1,300평 규모의 품질관리센터를 두고 모든 제품을 직접 검수한 뒤 출고합니다. 반도체의 팹리스 모델을 전통 제조업에 적용한 겁니다.

숫자가 이를 증명합니다. 설립 첫해인 2023년 매출 2억 4,000만 원이었고, 2024년에 13억 원을 달성했으며, 2025년에는 약 20억 원을 올려 2년 만에 매출이 10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세아그룹 계열사와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삼영전자공업 같은 대·중견기업이 고객으로 들어왔고, GVA자산운용과 스트롱벤처스, 신용보증기금이 추가로 투자했습니다.

2026년 3월에는 시카고에 미국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안 대표가 직접 상주하며 북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가공비가 한국 대비 최대 6배까지 비싼데, 한국의 제조 역량과 미국의 수요를 연결하면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바른동행이 첫 번째 문이었고, 그 문을 열고 나서 후속 투자와 대기업 고객, 해외 진출까지 이어졌습니다.

비링커 매출 성장 — 2.4억→13억→20억, 공장에서 시카고까지

1년 만에 20억, 2년 만에 매출 10배

바른동행 공식 페이지에 올라온 또 다른 팀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팀은 2024년 바른동행을 통해 첫 투자를 받고, 1년 만에 Pre-A 20억 원을 마무리했습니다. 또 다른 팀은 바른동행 이후 후속 투자까지 이어져서 2년 만에 매출이 10배 성장했고, 올해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이야기한 "3억으로 시작해서 20억까지 간 팀"과 "2년 만에 매출 10배를 찍은 팀"이 바로 이 팀들입니다. 둘 다 시드에서 끝나지 않았고, 바른동행이라는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후속 투자와 시리즈 라운드가 실제로 이어졌습니다.

KIAC의 후속 투자 유치율이 44%를 넘는다고 했는데, 그 44%에 들어간 팀들의 이야기가 이겁니다.

지원서를 열면, 네 가지를 채우면 됩니다

여기까지 읽고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 실행으로 넘어갈 차례입니다.

지원서를 열면 칸이 많아 보이지만, 심사역이 실제로 집중해서 보는 건 네 가지입니다.

첫째, 한 문장으로 정리된 문제 정의입니다. 우리가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링커의 경우 "하나의 가공품을 만들려면 서너 개 업체를 거쳐야 하는 제조업의 비효율"이 그 한 문장이었습니다. 이게 흐리면 나머지를 아무리 잘 써도 초점이 잡히지 않습니다.

둘째, MVP 또는 와이어프레임입니다. 아이디어만 있는 단계와 뭔가를 만들어본 단계는 다릅니다. 완성된 제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핵심 기능이 돌아가는 프로토타입이나 화면 흐름이 보이는 와이어프레임이면 충분합니다.

셋째, 팀 구성입니다. 개발자가 팀 안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인데 개발 전체를 외주에 의존하고 있으면 심사에서 물음표가 붙습니다.

넷째, "왜 지금"에 대한 답입니다. 이 문제를 왜 하필 지금 풀어야 하는지, 시장 타이밍이 왜 맞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링커가 미국 진출을 결정한 이유도 "미국 가공비가 한국 대비 6배 비싼 지금"이라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이미 세상에 많고, 차이를 만드는 건 "지금이 아니면 놓치는 이유"입니다.

네 가지가 다 준비되어 있으면 다음 분기에 바로 넣으면 됩니다. 하나라도 확신이 없으면 한 분기 더 채워서 넣는 게 더 나은 전략입니다.

지원서 핵심 4가지 — 문제 정의, MVP/와이어프레임, 팀 구성, 왜 지금

다음 기회는 6월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넣을지, 다음에 넣을지.

2026년부터 바른동행은 분기 모집으로 바뀌었습니다. 3월, 6월, 8월, 10월로, 1년에 네 번 기회가 옵니다.

1차 모집은 3월에 이미 진행됐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다음 기회는 6월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알아두면 좋은 게 있습니다. 떨어져도 3개월 뒤에 다시 넣을 수 있습니다. 바른동행 공식 FAQ에도 "얼마든지 재지원 가능하며, 과거 지원 이력에 따른 불이익은 없습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같은 서류를 그대로 내기보다는 지난번 이후 달라진 점을 중심으로 업데이트하는 걸 권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1년에 한 번이면 조급해지지만, 네 번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네 가지가 준비된 분기에 넣으면 됩니다.

공식 일정과 지원서는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 바른동행 페이지(apply.koreainvestment.ac)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흐름소프트는 그 문 앞까지 같이 걸어갑니다

바른동행에 지원하려면 MVP가 있어야 하고, 선정된 뒤에는 제품을 빠르게 키워야 합니다. 시드에서 TIPS로, TIPS에서 Series A로 넘어가는 동안 기술이 병목이 되면 자금이 있어도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흐름소프트는 초기 스타트업의 기술 설계부터 MVP 개발, 후속 라운드를 위한 제품 고도화까지 함께 갑니다. 자금 경로 위에서 기술이 멈추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지원을 준비하고 있거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 열린 문을 향해

이 글은 흐름소프트가 매일 관찰·정리하는 창업 생태계 시리즈입니다.